안녕하세요, hodo입니다.
지난 글 말미에 "복붙의 시대는 유물이 됐다"고 썼습니다. 오늘은 그 유물 이후의 작업 방식 얘기입니다.
먼저 고백부터. 요즘 유행하는 "제2의 뇌" 같은 거 저도 있습니다. 인터넷에서 옵시디언이라는 앱을 보고 만들었는데 — 앱을 쓰기는 싫어서 개념만 훔쳤습니다.
그래서 제 것은 마크다운 파일 몇 개가 든 폴더가 전부입니다. 재밌는 건, 그 폴더가 생긴 이유입니다.
이 시스템은 거창한 설계에서 나온 게 아닙니다. 신모델 앞에서 진심이 된 얼리어답터의 발버둥에서 나왔습니다.
어느 날 Claude의 새 모델(Fable 5)이 나왔는데, 조건이 짰습니다. 공개 기간 며칠. 주간 한도는 절반까지. 말하자면 시한부 모델이었습니다.
저는 새 모델이 나오면 남들보다 먼저,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써봐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입니다. 이 모델이 수납되기 전에 사용량을 전부 태우고 싶었습니다.
첫 번째 벽은 시간이었습니다. 토큰은 5시간마다 차오르는데, 낮에는 병원에서 근무하니 쿨타임이 다 차도 돌릴 사람이 없는 겁니다.
바이브 코더라면 아실 겁니다. 쿨타임이 헛도는 것만큼 아까운 게 없습니다. 그래서 출근길과 점심시간에 아이패드를 꺼냈습니다.
크롬 원격 데스크톱으로 제 방의 맥에 접속해서, 다음 작업을 지시하고 병원으로 들어갔습니다. 남들이 보면 뭐 하는 사람인가 싶었을 겁니다. 맞습니다. 신모델의 쿨타임을 관리하는 사람입니다.
그렇게 알뜰하게 태우다 보니 두 번째 벽이 왔습니다. 진짜로 방전이 되는 겁니다. 한창 일을 시키다가 토큰이 0이 되면, 작업이 그 자리에 멈춥니다.
재충전까지 기다리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습니다. 그때 깨달았습니다. 주전이 쓰러지면 이어받을 선수가 있어야 한다. 그래서 경쟁사를 영입했습니다.
처음 로스터는 Claude 100달러 주전, CodeX 20달러 서브였습니다. 그런데 서브가 일을 잘하더라고요. 지금은 둘 다 100달러 주전입니다. 구단 운영비만 늘었습니다.
그런데 릴레이에는 조건이 있습니다. 다음 주자가 배턴을 받으려면, 앞 주자가 어디까지 달렸는지 알아야 합니다.
서로 다른 회사의 AI라 기억을 공유하지도 못합니다. 게다가 저는 어떨 땐 맥북 앞에, 어떨 땐 맥미니 앞에, 어떨 땐 아이패드만 들고 밖에 있습니다.
그래서 결론이 하나로 모였습니다. 작업의 상태를 AI에게도, 기기에도 두지 말고 — 폴더에 두자.

iCloud 폴더 하나. 그 맨 위에 HANDOFF라는 파일. 지금 무슨 프로젝트가 어디까지 왔고 다음에 뭘 해야 하는지 적힌 인수인계 문서입니다.
어떤 기기에서 어떤 AI를 깨우든 첫 명령은 똑같습니다. "저 파일부터 읽고 시작해." 그러면 방전된 앞 주자가 어디서 멈췄든, 다음 주자가 그 자리부터 달립니다.
지난 글을 기억하시는 분은 눈치채셨을 겁니다. 아홉 달 전의 저는 채팅창에 대고 "지금까지 알려준 거 절대로 까먹지마!!!!"라고 외치던 사람입니다.
그 문제의 답을 이제야 찾은 겁니다. 기억은 AI가 하는 게 아니라, 파일이 하는 거였습니다. AI는 방전돼도, 파일은 남으니까요.
그러다 욕심이 한 뼘 더 자랐습니다. 프로젝트만 인수인계할 게 아니라, 나라는 사람도 인수인계하면 어떨까. 새 채팅을 열 때마다 "저는 병원약사고, 코드는 못 쓰고, 복붙은 잘하고…"를 반복하는 게 지겨웠거든요.
그래서 폴더에 프로젝트 문서 옆에 제 소개서까지 넣었습니다. 이제 어떤 AI든 깨어나면 제가 누군지 먼저 읽고 시작합니다. 자기소개는 인생에 한 번이면 족합니다.
참고로 이 폴더에는 이름도 있습니다. 위그드라실 — 북유럽 신화에서 아홉 세계를 잇는 나무입니다. 마크다운 폴더에 세계수 이름이라니 거창하죠.

이름이 있는 건 폴더만이 아닙니다. Ai 넷에게도 각자 이름이 있습니다. 맥북의 MBP-Claude와 MBP-CodeX, 맥미니의 mini-Claude와 mini-CodeX.
인수인계 문서에 "누가 어디까지 했는지"를 적으려면, 이름부터 필요하더라고요. 그렇게 굴리다 보니 요즘 작업 흐름은 이렇게 됐습니다.
Claude가 만들면 CodeX가 흠을 잡고, CodeX가 만들면 Claude가 흠을 잡습니다. 서로 다른 회사라 봐주는 게 없습니다.
지난 글에서 제가 "경쟁사인 챗지피티랑 협력 좀 하고 왔어"라며 손으로 코드를 나르던 그 일을, 이제는 시스템이 알아서 합니다.
P.S 이 글 역시 제 팀원이 작성했습니다. (수납됐다 돌아온 그 녀석입니다.)
그리고 지금까지 전 팀원이 사람인줄 알았습니다. 지금 알았습니다. 그분이 누군지.... ㅋㅋㅋ